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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진 찍어드립니다_부부의날 만든 권재도 목사 "백년해로 위한 다섯가지 약 있다"
2022-11-08 09:55:11  



안녕하세요? 저는 권재도입니다.

1995년 5월 21일, 저는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에서 ‘부부의 날’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28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부부의 날’ 기념행사를 전국적(100여 지자체)으로 개최해 왔습니다. 2001년부터는 ‘올해의 부부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해 왔고요.

더욱이 2001년엔 국회에 ‘부부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국회 청원건’을 제출하였고, 결국 2007년엔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제가 ‘부부의 날’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이룬 결실입니다.

올해 9월 14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 만30주년(진주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91년 경남 하동 화개장터에서 결혼식을 올린 게 첫 출발이었습니다.

사실 ‘부부의 날’ 운동에 수많은 분의 도움 있었습니다만, 아내의 성원이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평생 ‘부부의 날’ 운동에다 개척교회 하느라 아내에게 월급봉투 한 번 제대로 가져다준 적 없었습니다. 이런 무능력하고 돈키호테 같은 저를 대신해서 아내는 홀로 세 딸을 키우며 가정을 일구었습니다.

주변에서 제 아내 유성숙을 ‘천사’라고들 합니다. 상냥하고, 인자하며, 이웃에 화를 내는 법이 없습니다. 오만하지도 않습니다. 드러내길 원하지도 않습니다.

‘부부의 날’ 운동을 28년 해 오면서, 수많은 부부상 수상자들과 모범 부부상 수상자들에게서 부부 사진을 받거나 직접 찍어서 시상하곤 했지만, 정작 저희 부부의 인생 사진은 아직 없습니다.

아내의 생일 및 결혼 30주년을 맞아, 인생 사진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세계 부부의 날 위원회 창시자 겸 대표,
권재도 목사 드림




사진 촬영 날, 권재도 목사를 먼저 만났습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유성숙 여사가 일을 마치고 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권 목사에게 아내와 정말 도타운 사이인지 물었습니다.
‘부부의 날’을 창시한 당사자이니 남다를까 하여 물은 겁니다.

“저는 상당히 도탑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제게 원망이 좀 많이 있을 겁니다. 하하”
“‘부부의 날’을 만든 목사님에게도 아내의 원망이 있다고요?”
“하하. 제가 이 ‘부부의 날’ 운동에 제대로 미쳤거든요. 결혼할 때부터 집사람이 농담 삼아 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결혼식을 화개장터에서 하자고 할 때부터 좀 긴가민가했다고 하더라고요.”
“결혼식 장소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그 당시에 부산에 있었고, 집사람은 순천 사람이니 중간지대, 즉 영호남 화합의 장소 화개장터에서 결혼식을 했죠. 사실 결혼하기 한 달 전부터 영호남 부부 모임을 시작했고요. 이때 아내가 멀고 먼 화개장터에서 결혼식 올리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한다는 우스개를 하더라고요.”
“여기서부터 ‘부부의 날’ 운동이 이어진 건가요?”
“4년 후인 1995년 어린이날, TV에서 한 어린이 인터뷰를 봤어요.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아이의 답이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거요”였어요. 피자, 자전거, 게임기가 소원이 아니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게 소원이라니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죠. 어린이날, 어버이날은 물론 성년의 날도 있잖아요. 가정의 중심이 부부인데 부부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부부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부부의 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죠.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면서 메시지를 전하고 또 퍼포먼스를 하면서 이벤트 했죠. 그게 5월 21일이었어요.”


“부부의 날이 5월 21일인 게 첫 행사일이 그날이라서 그런가 보군요.”
“결국 그렇게 되었는데 나중에 의미를 부여했죠. 가정의 달인 5월에 둘이 하나가 되는 날, 즉 5월 21이 부부의 날이라고요. 하하”
“부부 싸움은 거의 안 하시죠?”
“하하. 많이 합니다. 안 할 수 없죠. 사람인데…. 다만 부부 싸움 후 깨닫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백년해로 헌장’을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이런 겁니다.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거주하는 백 세 부부에게 시상하면서 여태까지 백년해로해온 비결을 여쭈었죠. 이 부부가 “사람이 아니면 인내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인내로써 백 년을 서로 살아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각인되어 ‘인내는 한약이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나머지 약이 또 떠올랐죠. ‘웃음은 명약이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이다’  ‘기쁨은 신약이다’ ‘사랑 표현은 만병통치약이다’ 입니다.”



“이 다섯 가지 약이면 부부싸움도 극복하고 백년해로하는 겁니까?”
“하하 그렇죠. 다섯 가지 약, 다섯 첩을 지어 먹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중에서 저는 ‘기쁨은 신약이다’를 가장 잘 지을 수 있습니다. 아내든 누구든 기쁨을 주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이걸 좀 더 파고들어서 ‘권재도의 기쁨학 개론’이라는 책을 지난 5월에 출간했죠.”
“아내분에게 잘 먹히는 약입니까?”
“하하. 저더러 바깥에 나가서 기쁨을 외치는 거 반이라도 자기한테 해보라더라고요. 반의반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하하”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유성숙 여사가 도착했습니다.
‘부부의 날’에 대한 유 여사의 생각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처음에 할 때부터 국가 기념일을 만든다는 거예요. 저는 그냥 웃었죠. 진짜 웃을 수밖에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이한다는 게 그랬죠. 종이 한장 들고서 그냥 밖에 나가서 홍보랍시고 돌렸어요. 그것도 서울도 아니고 지방에서요.”
“그때 장미도 돌렸다면서요?”
“장미 생화 한 송이씩 주면서 돌렸죠, 그래서 이이를 ‘장미 목사’라고들 하죠. 처음엔 생화를 돌리다가 나중에 너무 힘들어서 조화로 바꿨죠. 그렇게 뜬구름 잡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했는데요. 그런데 이게 되더라고요.”
“유 여사님 버신 돈도 제법 많이 들어갔다고 들었는데요?”
“우리 큰애 중학교 2학년 때까지요. 그전엔 애들 무슨 학원 그런 거 거의 안 보냈으니까요. 그런데 애가 중학교 2학년 딱 되면서 피아노에 대한 재능이 보였어요. 애를 이렇게 놔두면 진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한테 5~6년은 별거 아니지만, 애들한테 5~6년은 너무 큰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어요. 지금까지는 내가 당신한테 전력을 다했으니 이제부터는 애들한테 전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했죠. 그때부터는 남편에 대한 물질적인 후원을 거의 끊었죠.”
“목사님이 서운해하지 않던가요?”
“엄청 서운해했죠. 제가 워낙 남편을 잘 알죠. 자식은 뒷전이고 오롯이 ‘부부의 날’에만 미쳤으니까요. 하긴 그랬으니 국가 기념일로 만들어 냈겠죠.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강하게 선포를 해야 했어요. 그렇게 안 하면 저희 식구는 살 수가 없을 상황이었으니까요.”
“결혼을 후회하세요?”
“저는 제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는 안 해요. 그런데 그냥 평범한 사람하고 살았으면 어떻게 살았겠느냐는 생각은 가끔 해보죠. 예를 들어 두 번의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별스러운 사람 말고, 진짜 평범하게 월급 또박또박 갖다 주는 그런 사람들을 만났으면 과연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죠.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사실 대답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부부의 날’을 창시한 부부에게서 들으리라 상상 못 한 답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꾸밈없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요즘에 부부는 로또라고 그러잖아요. 서로 맞는 게 하나도 없으니 부부를 로또라고 하죠. 그런데 다행히 저희는 맞는 거 딱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삼시 세끼 다 먹어야 하는 것. 또 하나는 느끼한 거 싫어하는 것. 그거 두 개 외에는 아무것도 맞는 게 없어요. 그런데도 살다 보니까 30년이 됐더라고요. 하하하”
“그래도 목사님은 유 여사님을 천사라고 하던데요.”
“천사가 아니고 전사예요. 여전사! 어느 순간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하기 시작했어요. 남편만 바라보고 있기에는 애들이 너무 빨리 크는 거예요. 애들한테 쏟아야 할 시간이 딱 정해져 있잖아요. 아빠로부터 기대할 거는 거의 없었죠. 자기는 자기 일 하기 바쁘니까요. 그래서 제가 모든 걸 다 책임지고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제가 전사가 돼 있었던 거죠. 이제 우리 막내가 스무 살이니까 이젠 제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부부의 날’만 신경 쓰는 철없는 남편이었네요.”
“나이 예순하나에 지금도 하버드로 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고 싶으면 가라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처음에 ‘부부의 날’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할 때 부부 상담도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사람의 꿈과 비전들을 아니까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됐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비전들을 젊은 사람한테 심어주면 참 바람직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당신 공부하고 싶으면 내가 붕어빵 장사를 해서라도 도와준다고 했죠. 이 사람 참 안 늙어요. 항상 꿈을 꾸거든요. 이게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 비결인 거 같아요. 미래를 계획하고 그래서 늙지 않은 참 좋은 장점을 가졌죠.”
유성숙 여사가 이야기하는 동안 권 목사는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요.

이즈음에서 그가 한마디 끼어들었습니다.

“올해 부부의 날인 5월 21일에 한미 정상 회담이 있었죠.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Married up’이라고 했잖아요. 결혼해서 잘 됐다는 의미인데 사실 제가 딱 그렇습니다. 아내 잘 만나 ‘Married up’ 된 거죠. 하하하”
솔직히 꾸밈없는 말들에 내심 조마조마했습니다. 혹여나 인생 사진 찍으러 와서 큰 부부 싸움 날까 하여 지레 걱정했던 겁니다. 이런 걱정과 달리 결국 ‘Married up’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니 30년 함께한 부부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사진을 찍으러 나섰습니다.
길을 나서며 맞잡은 손, 부부는 사진 찍는 내내 당최 놓지를 않았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원문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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